천상병의 시 ‘귀천’의 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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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祥炳(チョン・サンビョン)の詩、「帰天」です。

詩人千祥炳は植民地時代の1930年、兵庫県姫路市で生まれました。

彼は北朝鮮スパイ事件に連累されたり、いろいろ大変な人生を経ました。

「帰天」は1979年の彼の詩集「居酒屋で」に載ってた詩です。

人生を肯定的に眺めてる詩で、これも気に入り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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帰天 :: 千祥炳

私天へ帰ろう
暁やってくると去っていく
露と一緒に手に手を握って

私天へ帰ろう
夕焼けを一緒に二人っきり
麓で遊んでて雲が手振ったら

私天へ帰ろう
美しい世の中遠足を終える日
行って、美しかったと言お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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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天に帰ろう」って必ずしも自殺を意味するのではありませんからね。

割と自然死に近いと思いますけど。(笑)

윤동주의 시 ‘쉽게 씌여진 시’ 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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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尹東柱(ユン・ドンジュ)は植民地時代の詩人です。1917年生まれて、1945年亡くなりました。

立教大学英文科に留学して、後でまた同志社大学英文科に。

で、学業の途中な1943年7月、実家に帰ろうとしたところ、抗日運動をした疑いで日本警察に逮捕され、2年刑を宣告されて福岡刑務所で服役しましたが、そのうち健康悪化で獄中死しました。

28歳…若いごろ…。

彼の「易しく書かれた詩」に感動しました。これは彼が日本留学中書いた最後の詩です。

自我省察の意味。

一番最後の、「私は私に手を出して // 涙と慰安で握る最初の握手。」というところですごく…

分裂された自分の二人の自我が仲直りするところ。

とりあえず、和訳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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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しく書かれた詩 :: 尹東柱

窓の外には夜雨がひそひそと
六畳部屋は他国。

詩人とは悲しい天命だってことをわかるのに
ちょっと詩を書いてみよう。

汗のにおいと愛のにおいがたっぷりする
送られた学費封筒をいただいて

大学ノートを挟んで
老教授の講義を聴きに行く。

考えてみると幼い日の友達を
一人、二人、全部失って

私は何を望んで
私はただ、独りで沈殿するのであろう?

人生は生き難しいそうなのに
詩がこんなに易しく書かれるのは
恥ずかしいことだ。

六畳部屋は他国
窓の外に夜雨がひそひそと話してて

灯火を明かせて闇をちょっと追い出して、
時代のように来る朝を待つ最後の私。

私は私に手を出して
涙と慰安で握る最初の握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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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更考えてみるんだけど、六畳部屋って何だか平砂宿舎の四角部屋のイメージがするんじゃない?(笑)

미당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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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三年の間私を育てたのは八割が風だ」という、詩句に感動しました。

韓国の詩人、未堂(ミダン)徐廷柱(ソ・ジョンジュ)の「自画像」。

日帝侵略期な1937年、彼が23歳だったとき書いた詩。

二十一年の間僕を育てたのって、八割は何でしょうか。

最近こういうのに思い込むの好きになった…。

原詩を日本語に訳してみ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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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画像 :: 徐廷柱

父はシモベだった。夜遅くても来なかった。
白髪な老いたばあさんとなつめ花が寂しく立ってるだけだった。
母は月を見て杏子ひとつでも食べたいって語ったが…
土を壁にした灯火の下の、爪の黒い母の息子。
甲午年だったっけ…海に出てまだ戻ってきてないという外祖父の濃い髪の毛とその大きな目が私と似てるそうだ。

二十三年の間私を育てたのは八割が風だ。
世の中を歩いても歩いても恥をさらすだけだった。
ある人は私の目から罪人を読んで去って
ある人は私の口からアホを呼んで去るが、
私は何も悔いないことにしよう。

光が燦爛と降り注ぐある朝にも
額の上におかれた詩の露には
数滴の血がいつも混じってて
日当たりにでも日陰にでも
舌を垂れた病気の雄犬のようにあえぎながら私は来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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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構気に入る詩だ…自分のことを言ってるみたいし。

一所懸命暮らそう。

海よ(水のいの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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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作-高野喜久雄

온갖 티끌
더러워져 지칠대로 지친 물
받아들여서
모두 다 받아들여서
언제나 새로웁게 다시 태어나.
바다의 불가사의

쉼없는 바닷가
물결의 손가락 흰 손가락 계속해서
꾸준히 계속해서
수없는 모래를 수없는 자갈을
계속해 세고 있네.
바다의 불가사의

해파리는 바다의 달
불가사리는 바다의 별
갯반디 해마 하늘을 사랑하고
진주조개는 빛을 품고 있네.

그리고 깊이 어두운 바다의 밑바닥에선
밑에서부터 위로
참으로 밑에서부터 위로
눈은
흰 눈은 힘차게 내린다.

오오 바다여!
그칠 새 없는 시작이여
넘치는 듯 보이면서
넘치는 일은 없고
끝날 듯이 보이면서
끝나는 일은 없고
억년의 옛날에도 지금도
그대는
언제나 시작이다.
오오 하늘로
저 높은 하늘에의 시작이란 것이다!

오르라 올라가거라
그대 물의 사랑
그대 물의 생명이여

비록 스스로의 무거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구름이 되어
다시 한번 내려온다 해도

오르라 올라가거라
안 보이는 날개
외곬스런 날개 있는 한
오르라 올라가거라
오오!!

海(水のいの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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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作-高野喜久雄

하늘을 비추려고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해질 때도 있네.
바위와 섞이지 못해
온종일
미친듯 날뛸 때도 있네.

하지만
모든 강은 모두
그대를 향해 항상 흘렀다.
바닥에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히고
하늘에 되돌아 갈 것은
하늘에 되돌려 보냈다.

사람이라 해도 갈 수 없게 되면은
그대를 향하여 간다.
그대 안의 한 어머니를 향하여 간다.

그리하여 그대는
세월 흘러서는 흡족스런 죽음을
살짝 바닷가로 밀어 올린다.
보십시오
이것을 보십시오 하고 말하고 싶은 듯이.

川(水のいの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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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作-高野喜久雄

어째, 고개 올라가질 못할까!
어째, 낮은 데로 가기밖에는 못할까!

고여서 괴로운 못, 빙글빙글 소용돌이의 조바심
진실로 강은 산을 사랑하네.
솟아오른 봉오리를 사랑하는 생명
하늘의 높음을 사랑하는 생명

산을 사랑하여 돌을 잉태하고
하늘을 사랑하여 물고기를 잉태한다.
거슬러 오르는 돌은 산의 모양
오르막을 오르는 물고기는 하늘을 견디네.

하지만 역시 밑으로 밑으로
갈 수밖엔 없네, 강의 흐름.

오오! 강이란 무엇인가?
강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관두자
우리들도 또한
똑같은 돌을 똑같은 물고기를 잉태하는 것
사랑하는 강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水たまり(水のいの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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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作-高野喜久雄

바퀴 자국 패인 곳
여기에 저기에
패인 데에 고이는
물웅덩이
흘러가는 모양도 정해지지도 않고
다만
조용히
고여있기만 하는
어디에든 있는 물웅덩이
이윽고
사라져가는
물웅덩이
우리와 닮은
물웅덩이

우리들의 깊이
그것은 웅덩이의 깊이
우리들의 말
그것은 웅덩이의 말
웅덩이의 약속
웅덩이의 수긍
웅덩이의 단란

그러나
우리들에게도
생명이란 없을까
하늘로 향하는
생명이란 없을까
저 물웅덩이의 탁해진 물이
하늘을 비추려고 하네
자그마한
그렇지만 외곬같은 생명이란 없는걸까

비추어진 하늘의
푸르름처럼
깨끗해지려 괴로워하는
자그마한 마음
비추어진 하늘의
높이 그대로
있으려고 괴로워하는
자그마한 마음

雨(水のいの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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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作-高野喜久雄

줄기차게 내리거라 비여
줄기차게 내려
모든
가만 선 것의 위에
또한
누운 것의 위에

줄기차게 내리거라 비여
줄기차게 내려
모든
서로 용서하는 것의 위에
또한
서로 용서못할 것의 위에

줄기차게 내리거라 비여
가리지 말며
말라버린 우물
밟혀버린 잔디밭
숨져버린 나무 끝
또한 인내의 뿌리에도

줄기차게 내리거라
그리고 되돌아가게 하라
우물을 우물로
터를 터로
나무를 나무숲으로
흙을 흙으로

오오 모든 것을
그것에게
그 손에게

이 태평함을 질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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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태평하다.
그날 그때처럼
뭔가 간절히
목이 타도록 원하는

그런 것이 없다.

불안하다.

태평함을
질책한다.

목표의식이 없어진 것인가?

그때처럼 그렇게
물 흐르듯 써내려지던

그 느낌은 어디로 갔을까?

태평함을 질책한다.

과거의 자아가 현재의 자아를 채찍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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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끊임없이

과거의 자아에게 채찍질을 당한다.

과거의 자아가 이룩해 놓은 미래의 자아가

현실의 자아가 되었다.

현실의 자아가 가진 의욕은

과거의 자아가 가진 의욕보다 약하다.

떠밀린다.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질 못한다.

언제까지나 과거의 자아보다 못난 현재의 자아가 될 수는 없다.

현재의 자아는

미래의 자아가 과거의 자아보다 뛰어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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